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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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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인천)광복달계기 직원기고(보훈과 오정희, 8.19일자)
부서 보훈계
가가호호 펄럭이는 태극의 물결을 떠올리며... 인천보훈지청 보훈과 오정희 올해는 우리나라가 암흑의 어둠으로부터 광명을 되찾은 지 61주년이 되는 해이다. 삼일절날 떠오르는 태극기는 처절한 우리의 역사와 일제의 총칼에 비참히 쓰러져간 선조들의 피맺힌 한이 느껴져 가슴 한켠을 저리게 하지만 같은 역사의 고리로 얽어있는 이날의 태극기는 그날과는 달리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이날만큼은 태극기를 움켜쥐고 거리거리로 뛰어나가 61년전 그날처럼 목 놓아“만세”를 부르고 싶은 충동은 해를 거듭해도 사라지 질 않는다. 태극기의 효시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와 같은 태극기의 시조는 조선시대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때는 나라의 이름인 “조선”을 따서 “조선국기”라고 불렸으며, 현재 우리가 부르는 태극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까지 “조선국기”로 부르던 것을 일본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바꿔 불렀고 그렇게 약속한 것이 지금의 태극기로 불러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와 같은 태극기의 효시는 고종황제가 열강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주권독립국임을 알리기 위해 독창적으로 만들었으며 이것이 일본의 수신사로 떠나는 박영효에게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제작된 태극기는 일제 강점기 동안 역사의 한 장에서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어왔다. 그 탄생부터가 난산을 겪는 산모의 진통처럼 모진 고통에서 태어나 긴 세월동안 제대로 햇빛도 한번 쐬어보지 못한 채 깊은 장롱이나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서만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모진 풍파속에서도 민족의 상징으로 식민지백성의 한 많은 설움을 삭혀주던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번 현충일 때 듬성듬성 게양된 태극기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우리의 태극기가 홀대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올해도 휴가철에다, 광복절을 포함해 징검다리 황금연휴가 시작된다고 한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속에서 여유를 갖고 쉬어야 하는 휴식도 중요하지만 기쁜 날 가가호호 태극기를 게양하여 우리민족 축제의 날을 더욱 흥겹게 하면 어떨까? 이제는 장롱속에 가두어 두고 몰래몰래 보는 태극기가 아니라 항시 게양하고 볼 때마다 가슴 가득 감동을 느끼는 그런 태극기가 되길 바라며 우리 모두 그런 태극기가 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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